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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FIN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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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핀란드의 기원을 찾아보면 우랄어족의 피노우그리아어계 집단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들은 우랄산맥 서쪽의 볼가강유역에서 거주하였으나, 기원전 500년경에 서진하기 시작하면서, 슬라브족 및 북부 게르만족과 차례로 조우하면서 유럽문화와 생활양식을 습득하면서 핀란드 땅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였다.
핀란드의 원시부족시대는 크게 3부족의 정립형태를 띄는데, 항상 성실하며, 생활력이 강한 하메인과 음악을 즐기는 카렐리아인, 밝고 명랑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사보인 등으로 3부족이 있었다. 그러나 이 3부족은 통일국가를 형성하지도 못 한 체 자신들의 거주지이자 삶에 터전인 동ㆍ서양의 세력에 충돌의 장으로 변모하였고 외부세력의 식민지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12세기 스웨덴 왕 에릭 9세와 웁살라 주교의 "십자군"이 핀란드에 군대를 진격하였고, 그 후 세력을 동쪽으로 뻗어 동방정교회세력이 강한 노브고로트공국=러시아지역과 충돌하게 되고, 이 전쟁의 결과로 두 나라 사이에는 파하키나사리조약이 성립되면서 1581년 핀란드는 대공국이 되었다가 1634년 핀란드는 스웨덴의 정식 식민지로 자래한다. 하지만 14세기 후반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국가엽합의 형태로 칼마르동맹을 형성한다. 하지만 곧 내부 분열로 붕괴되고, 독자전선을 걸었던 스웨덴의 쿠스타프 1세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자국인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복음루터파로 개종시킨다.
1581년에 핀란드는 스웨덴에 의한 대공국으로 승격하지만 혹독한 식민정책에 반발한 국내귀족들은 핀란드 내의 귀족들을 일소하는 한편, 러시아와의 북방전쟁 준비에 들어간다. 1790년 카를 12세가 거느린 스웨덴과 핀란드 연합군은 표트르 1세의 러시아군과 폴타바에서 일전을 벌인 결과 핀란드군의 필사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스웨덴군의 갑작스런 병력철수로 패배한다. 이러한 결과 스웨덴 17세기에 획득한 영토를 잃게된다. 1808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는 핀란드를 침범, 1809년 핀란드는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일부가 되었다.
러시아황제는 식민지 핀란드에 종교권과 국가법 등 일정에 자치권을 부여하였고, 짜르체제에 대한 충성을 기본으로 한 강력한 러시아화를 꽤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식민정책이 강화될수록 핀란드 내의 민족적 자각과 독립의 소리가 고조되었다. 핀란드의 국가주의가 성장하게 되었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1905년 러일전쟁에 러시아가 패하고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였고 핀란드는 독립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1917년 12월 6일에 핀란드는 독립을 선포하였다. 독립 후 핀란드는 백위군과 적위군 사이의 내전으로 혼란상황을 겪었다. 도시의 자산계급이 중심이었던 백위군의 정국을 수습한 후 20년간 평화를 유지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구소련과의 영토문제로 독일군을 지지하며 참전하나 대전 막바지에 전국이 불리해지자 구소련과 휴전조약을 체결하고 전선에서 이탈한다.
1941년 러시아, 핀란드 전쟁이 발발하였고 핀란드 인들은 러시아 영토로 진격하였고 1944년에 평화가 정착되면서 본래의 거주지로 귀환하게 된다. 참전의 대가로 영토의 12%를 구소련에게 빼앗기고 8억달러의 배상금까지 지불하였으나 막대한 경제적 고난을 겪었으나, 종전 후 소련과의 관계는 우호적 입장을 유지하게 된다. 대전 후 중립노선을 고수하던 핀란드는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선진복지국가를 구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