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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SLOVA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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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역사
BC이전 역사 개요
고대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 최초로 거주한 민족은 켈트족이었다. 그후 AD 1세기경부터 게르만인과 로마인들이 이 지역에 진출하여 켈트인들을 축출하고 이 지역의 주도권 쟁탈을 위한 분쟁을 야기시켰다. 그 후 이 지역에 슬라브인이 정착한 시기는 AD 5세기경부터이며 고대 체코인은 현재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고대 슬로바키아인은 현재의 슬로바키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AC 1년 - 1900년 까지의 역사
즉 슬라브족이 현재의 슬로바키아 지역에 정착한 것은 5세기 경에 속한다. 그때쯤 AVARS족이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의 슬라브족들을 침략하자 이에 대항하여 SAMO가 몇몇 부족 들을 통합하여, 625년 보헤미아를 중심으로 이 지역 최초의 슬라브족 국가인 SAMO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SAMO 왕국도 658년 SAMO의 죽음과 함께 멸망하게 되었다. 9세기초 833년 모라비아의 왕자는 니트라를 점령하고 지금의 중·서부 슬로바키아와 모라비아, 그리고 체코를 포함하는 대모라비아 제국을 세웠다. 이 왕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인이 하나로 통일한 국가였다. 대모라비아 제국의 왕자는 서쪽의 프랑크족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비잔틴 황제에게 선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는데, 863년에 그리스 선교사인 키릴과 메토디우스가 파견되었다. 이들은 그리스 정교로의 선교는 이루지 못했지만 예식과 성경의 전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최초의 슬라브 문자인 키릴 문자를 만들었다. 이 왕국은 계속 성장해 보헤미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남부, 헝가리 서부까지 통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비잔틴 제국의 선교사 CYRIL이 기독교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고 CYRIL 위에서 말했듯이 문자 를 고안해 복음서 등을 번역하였다. 이 CYRIL 문자는 아직도 러시아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모라비아 왕국도 907년 마쟈르족들의 침입을 받고 멸망하게 되었고 마쟈르족은 현재의 슬로바키아 지역에 헝가리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이는 나중에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907년 들어 대모라비아 제국은 내부 지배층의 분열과 독일과 헝가리의 압력으로 멸망하게 되었다.907년 모라비아 왕국이 멸망한후 10세기경 PREMYSLID 족이 체코 부족을 통합하여 보헤미아를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보헤미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보헤미아 왕국은 1029년 모라비아 지역을 완전히 병합하는 등 그 세력이 갈수록 커져 갔다. 침입자인 헝가리인은 슬로바키아 남부에 정착하여 1000년에 헝가리 왕국에 병합시켰고, 1018년에는 슬로바키아 전역이 헝가리에 통합되었다. 이 때 헝가리의 군주는 서구의 라틴 문명을 흡수하고자 로마 카톨릭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13세기 들어 타타르인의 침입을 받은 후, 헝가리 왕은 독일인들을 동쪽 국경(현재의 동슬로바키아)에 정착시켜서 차후의 침략에 대비한 완충 역할을 맡겼다. 이 때 슬라브어에서 분리된 슬로바키아어가 탄생하게 되었다. 14세기부터 PREMYSLID 왕조가 단절되고 룩셈부르크 왕조가 지배한후 모라비아 왕국은 체코슬로바키아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슬로바키아는 동슬로바키아 지역의 스피시가 1412년부터 1772년까지 폴란드에 귀속된 기간을 빼고는 1918년까지 헝가리의 지배를 받게 된다. 16세기 초반 투르크가 헝가리를 침공했을 때 헝가리는 수도를 부다에서 브라티슬라바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후 합스부르크가에서 헝가리의 왕위와 영토를 맡게 되자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9세기 이래 처음으로 하나의 통치권 안에 놓이게 된다. 1526년 모학(MOHACS)전투에서 룩셈부르크가가 오토만에 패하고 페르디난드 1세가 체코와 헝가리의 왕이 된후, 보헤미아와 슬로바키아는 합스부르그가의 통치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 후 보헤미아와 합스부르그가의 30년 전쟁 결과 보헤미아가 패하게 되자 합스부 그가의 체코에 대한 지배가 확고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종결되고, 보헤미아 왕국이 합스부르그가의 왕가로 합병되었다.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탄생한 후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체코는 오스트리아의 각각 지배를 받게 되었다. 1900년 TOMAS MASARYK은 체코 진보당을 설립하여 의회정치와 보통선거를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슬로바키아에서는 슬로바키아 민족당이 결성되어 민족 운동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MASARYK은 1914년 12월 독립투쟁을 위해 런던으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으며, 1916년 EDUARD BENES 및 MILAN STEFANIK와 함께 체코슬로바키아국민회의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1918년 5월 13일 피츠버그 협정에서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의 정치적 연합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1918년에는 연합국이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회의를 승인하고,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후 정부수립을 위한 최고기구로 인정하게 되었다. 1918년 10월 체코슬로바키아 국민회의는 임시정부로 재조직되었으며, 10월 18일 MASARYK와 BENES는 워싱톤과 파리에서 각각 독립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918년 10월 28일 세계 제 1차대전의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된후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건국했다. 새로운 국가는 17세기초 오스트리아 제국에 병합될 때까지 중유럽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의 체코인들과 거의 1,000년동안 헝가리의 지배하에 있던 슬로바키아인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이 두 민족은 각각 자치단체에 결정권이 있었고 서로 이질적인 면도 많았다.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은 세계 제 1차대전과 제 2차대전 사이에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었던 나라이다. 이 점은 체코슬로바키아의 1, 2대 대통령이었던 Tomas Masaryk과 Edvard Benes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민주주의는 사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지켜졌으나 인종적인 다양함이 정당제도를 약화시켰다. 그리하여 이런 정당제도는 단기적으로 정당간의 연립정부의 탄생을 야기시켰고 결국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의 주요한 정치 불안요인은 나라의 2/3를 차지하는 슬로바키아인과 독일인들의 불만이 커진데 있었다고 한다. 1938년 이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슬로바키아 주민들의 불만은 국가의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체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독점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런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하나의 체코슬로바키아 국가라는 개념과 체코인들과 슬로바키아인들은 비록 다른 민족이지만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홍보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기는 했다. 그러나 두 민족은 비록 언어는 비슷했지만 역사, 문화, 경제적으로 다른 점이 많이 있었다. 두 나라의 역사를 보면 9세기경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모라비아 제국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그 후 중세기에 슬로바키아는 Magyar의 지배를 받았던 반면, 체코는 정치 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를 건국하였다. 또 1348년 보헤미아의 찰스 1세에 의해서 중유럽에서 처음으로 프라하에 대학교를 설립했다. 그후 체코는 1620년 오스트리아에 점령당했고 바로뒤 합스부르크 제국에 합병되었다. 그리하여 로마 가톨릭의 수용을 강요당하게 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19세기 개신교는 체코 민족주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반면 슬로바키아는 로마 가톨릭교를 수용하였고 체코와는 달리 도시화·산업화를 이룩하지 못하였다.
1991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그러나 이 두 민족은 수세기에 걸쳐 상호 연관되어서 살아왔기 때문에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다른 점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를 들어 슬로바키아인들은 교육과 학문분야에서 뛰어나 19세기 체코 민족주의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여기엔 시인인 Jan Kollar와 고고학자인 Pavel Josef Safarik 등이 큰 역할을 했다. 많은 슬로바키아인들도 체코 못지 않게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데 열성적이었다. 그래서 슬로바키아인들의 외교적인 노력과 홍보가 세계 제 1차대전 기간 동안 벌어졌다. 또 체코와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