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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BOS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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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요

탈린

45,215km2

계통적으로는 우랄어족의 한 갈래인 핀-우고르어군이자, 발트핀어파에 속하는 언어이다. 에스토니아에는 2대의 주요 방언인 북부 방언과 남부 방언이 있는데, 탈린방언과 탈투 방언으로 불리기도 하며 이들 방언들은 서로 많은 차이가 있다. 오늘날 표준어는 주로 북부 탈린 방언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에스토니아 문어(文語)의 기본 형태가 되었다. 핀란드어, 보트어, 리보니아어, 잉그리아어, 카렐리아어, 벱스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언어구조상 자음과 모음의 길이를 3개의 등급으로 나누는 독특한 길이 대비로 유명하다. 러시아어를 대신하여 1989년 에스토니아어가 국가 공식 언어가 되었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지 않고 공용어로서 에스토니아어의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국기는 위로부터 파랑, 검정, 흰색의 동일한 3개의 수평의 줄로 이루어져 있다. 1940년 이전에 사용하던 국기를 1990년 5월 최고회의(Supreme Council)가 복원하기 시작하여 1992년 7월 7일 국기의 문양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국기의 3가지 색상은 에스토니아의 역사, 민속, 풍습, 자연을 나타내고 있다. 파랑색은 신뢰, 충성, 헌신을 상징하며 하늘, 바다, 호수를 나타내며, 검은 색은 암울했던 시절의 에스토니아 국민들이 겪었던 고난을 상징하며 전통적으로 과거 에스토니아 농부의 검은 색 웃옷을 나타낸다. 흰색은 계몽과 덕(德)을 향한 노력을 상징하며 자작나무 껍질과 눈, 여름 동안의 백야를 상징한다.
그들의 국장은 1925년 6월 19일 의회에서 국장 사용에 관한 법이 통과되었다. 국장은 문양이 큰 것과 작은 것 두 가지가 있다. 큰 것은 방패 모양의 금색 바탕에 은색 눈과 붉은 색 혀를 가진 푸른색 사자가 3 마리 세로로 있고, 방패의 왼쪽, 오른쪽, 아래의 3 면을 금색의 오크나무 잎이 둘러싸고 있다. 작은 국장은 방패 둘레의 금색 잎이 없고 나머지는 똑같다. 첫 번째 사자는 자유를 위해 싸운 용기를 상징하며, 두 번째 사자는 1343년 Harjumaaa에서 있었던 폭동의 용기를 상징하고, 세 번째 사자는 1918-1920년 자유를 위해 싸운 에스토니아인들의 용기를 상징한다. 오크나무 잎은 에스토니아의 인내와 힘, 그리고 자유의 영원함을 나타낸다.
국가는 3절로 되어 있으며,'나의 조국, 나의 자랑이며 기쁨'이란 뜻으로 작사자는 Friefrich Pacius이고, 작곡자는 John Voldrmer Jannsen이다. 에스토니아의 수도는 북부에 위치한 탈린(Tallinn)으로 핀란드만(Gulf of Finland)에 접해 있는 항구도시이다. 에스토니아어로 탈린(Tallinn)이란'덴마크 사람의 거리'라는 뜻이다. 12세기 중엽부터 역사에 등장하여 4,500개 이상의 역사적 건축물이 잘 보존된 고도(古都)이다.
발트해 가장 남쪽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국가의 기원을 알아보면 우선 이 지방에서는 옛부터 에스토니아 인이 살고 있었으며 북구 제국과 독일의 침략을 자주 받았고, 18세기에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독립의 기운이 고조되어 다음 해 1918년 에스토니아는 독립을 선언했으며, 제2차 대전 중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지만 최근 소련의 정치, 경제 재건 정책(페레스트로이카)과 연방해체에 의해 1991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독립을 달성했다.
또한, 에스토니아의 자연 환경은 내륙의 호수는 총 2,015㎢이며 1,400개의 자연 및 인공 호수가 있다. 가장 큰 호수는 러시아 연방과의 국경지대의 페이프스(Peipsi / 3,555㎢)이며, 가장 큰 인공호수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국경의 나르바저수지(Narva / 190㎢)이다. 가장 깊은 호수는 Rouge Suurjav(수심 38m), 두 번째로 큰 호수는 Vortsjarv(270㎢)이고, 그외에도 Pihkva 호수 등이 있다. 길이가 10㎞ 이상이 넘는 강이 420개가 있다. 분당 50㎡ 이상의 강물이 흐르는 강은 Narva(399㎡), Emajogi(72㎡), Parnu(64㎡)등 3개 뿐이다. 핀란드만(Gulf of Finland)으로 흐르는 북쪽 지방의 강들은 그림같은 폭포를 이루며 일부는 동쪽의 페이푸스호(Peipsi)와 서쪽의 리가만(Gulf of Riga)으로 유입된다. Narva강은 Peipsi호를 거쳐 급류를 이루다가 핀란드만으로 흘러드 데 제 2차 세계대전 후에 이 수력을 이용하여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에스토니아의 식물은 북부 혼합림에 속한다. 선사시대에는 해안일부지방만 제외한 전국토가 숲으로 뒤덮혀 있었다. 당시는 양물푸레나무, 단풍나무, 가문비나무, 소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었다. 현재는 숲이 전국토의 40%를 차지하며 오리나무, 자작나무 등이 자라고 혼합림을 이룬다. 숲은 에스토니아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산림과 관목지대는 늑대, 엘크, 곰, 멧돼지, 스라소니, 수달 등의 사냥 장소가 되었다. 발코손바닥사슴, 노루, 붉은 사슴, 멧돼지 등을 비롯한 60여종의 포유동물이 서식하며 특히 북동부 삼림에서는 곰과 시라소니를 볼 수 있다.동식물은 빙하시대 이후 1만년 동안 계속되었다. 1,500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59종의 식물과 198종의 동물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현재 Lahemaa(649㎢)국립공원, 1개의 생물보호구역, 1개의 수상보호구역, 5개의 국가 자연 보호구역 등 총 630㎢의 보호구역이 있으나 당면한 문제는 증가되는 공기 및 수질 오염과 자연보호이다.
종교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독교를 믿는다. 전통적으로 에스토니아인들은 루터교(40%)를, 러시아인은 러시아정교(25%)를 신앙으로 가지며 그외에 프로테스탄트, 로마가톨릭, 감리교, 제 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회교도 등의 종교도 있다. 에스토니아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전파된 것은 11세기 초였다. 12세기 말이 되어서야 로마가 톨릭 교회의 전도활동이 시작되었다. 1220년 에스토니아가 점렴당할 당시에 로마가톨릭의 포교활동은 절정에 달하여 인구의 대부분이 기독교화되었다. 로마가톨릭의 지배는 1520년 종교개혁이 일어날때까지 300년간 지속되었다. 예배언어는 에스토니아어로 바뀌었고 에스토니아어로 된 종교문헌의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1686년 신약성서의 에스토니아어로 출판되었고 성서의 완역은 1739년부터 시작되었다. 1700-1712년 북구 전쟁의 결과 에스토니아의 모든 영토가 러시아에 의해 점령당하고 러시아정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계율이 가벼워지기를 희망하면서 에스토니아의 일부 농민은 러시아정교로 신앙으로 바꿨다. 러시아정교 신자들은 점차 인구의 20%까지 증가하였다. 러시아 종주권을 굳건히하기 위해 알렉산더 3세(1762-1796)는 러시아정교 교회를 건립하도록 하였다. 1918-1940년 복음루터교가 집회조직을 가지며 에스토니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인구의 80%가 루터파 교회에 소속되었다. 소련의 점령하에서 종교활동은 금지되었고 교회재산은 몰수되었으며 Tartu University의 신학부는 폐교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 인구의 10%가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인임을 공언하였고, 1988년이후 에스토니아에서 루터파 교회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종교집회가 활성화되고 교회재산도 회복되었다. 1993년 9월 교황 John Paul 2세가 에스토니아를 방문함으로 로마가톨릭교회가 부활하였다
주요민족
Danish Assessment Book(Liber Census Daniae)와 Henrik's Livonian Chronicle(Heinrici Chronicon Livoniae)에 의하면 에스토니아 역사상 최초의 인구수 증가를 알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13세기 당시 에스토니아의 인구수는 10만-20만으로 추정된다. 1695-97년 사이에 많은 전쟁과 전염병 등이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1550년 에스토니아인과 핀족(Finns)의 수가 거의 비슷하였는데 오늘날에는 에스토니아인이 핀족의 5배가 되었다. 14-15세기에는 스웨덴, 독일, 라트비아인들이 16세기에 러시아, 핀족들이 에스토니아로 이주하여 중세의 에스토니아 국민을 이루었다. 민족 구성을 보면, 에스토니아인(Estonian)이 61.5%, 러시아인(Russian)이 30.3%이며,우크라이나인(Ukrainian)은 3.17%, 벨라루시인(Byelorussian)의 경우는 1.8%에 달하고, 핀인(Finns) 1.1%, 기타 종족으로는 2.13%를 이룬다. 19세기 중엽 에스토니아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19세기 말에는 미국 등 여러 국가로 이주하였다. 서방국가로의 이주는 2차례에 걸친 세계대전 동안 소규모로 계속되었다. 에스토니아의 민족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다. 1934년 인구 센서스 결과 에스토니아인이 전국민의 88.2%를 차지하였고 러시아와의 국경지대에 러시아인이 가장 큰 비율인 8.2%를 차지하고 독일인이 1.5%, 스웨덴인이 0.7%를 차지했다. 1940년 소련의 합병은 인구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40-41년 대규모의 추방되었고, 전쟁, 1941-45년 군사동원, 대규모 이민 등의 결과로, 1939년 1,136,000명에서 1945년 854,000명으로 감소하였다. 1940년대 중반에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어 소수민족들이 국외로 이주하였다. 1939-41년 독일인들은 히틀러(Hitler)의 송환에 따라 본국으로 이주하였고 1943-44년 소련과 독일과의 비밀협정결과 스웨덴인들이 에스토니아를 떠났다. 1945년 에스토니아인들은 대략 총인구의 94%를 차지했다. 다시말해, 소련 점령후 특히 소련의 식민융화정책에 영향을 받아 수백만명이 중앙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시로부터 에스토니아로 이주하였다. 1945-1950년 이주해온 인구수는 24만명이었다. 소련점령의 전체 기간동안 50만명 이상이 에스토니아로 이주해왔다. 1989년 센서스 결과 에스토니아인은 총인구의 61.5%로 감소하였고, 러시아인이 30.3%, 우크라이나인이 3.1%, 벨라루시인이 1.8%를 차지하였다. 소련에 합병되면서 중공업이 시작되었고 중공업 공장들은 소련 중앙정부의 통제하에 있었다. 이로 인해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에스토니아로의 인구이동을 가져왔으며, 공장 생산은 소련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에스토니아 북동쪽 산업지역인 Narva 지역은 에스토니아인 이외의 민족이 96%를 이루지만 시골지역에는 87%가 에스토니아인이다. 1986-1987년 에스토니아의 총 출생률은 2,185명, 1989년에 2,312명이었다. 이는 다른 유럽국가들과 비교해볼 때 꽤 높은 수치이나 최근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1987-1988년 25,100명이 출생하였으며, 1990년 23,000명 이하가 출생하였다. 사망자수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 1986-1987년 평균수명은 71세(남자 66.4/여자 75.1세)였다. 1990년대초 에스토니아 인구는 1,576,000명이었다. 최근들어 출생과 에스토니아로의 이주가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대가족에 대한 지원을 위한 정부운동이 있었지만 인구통계학적으로 중요한 변화는 없다. 인구의 고령화는 계속되고 출생률은 낮아지고 있으며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기후
기후는 유라시아 대륙과 발트해와 북대서양 사이에 위치한 에스토니아의 지리적 위치에 영향을 받아 해양성의 습한 기후로 전반적으로 농업에 적합하다. 겨울에는 온난하며 여름에는 시원하다. 서쪽 지방의 연평균 기온은 6.0℃이며, 동쪽지방의 연평균 기온은 4.2 - 4.5℃이다. 연간 강우량은 해안지방이 500mm, 고지대가 700mm로 지역에 따른 차이가 있다. 계절별로 볼 때 여름에 강우량이 가장 많고 봄은 건조하다. 수도 탈린(Tallinn)의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5℃, 기온이 가장 낮은 2월 평균 기온은 영하 6℃, 기온이 가장 높은 7월 평균 기온은 17.1℃이고 연간 강우량은 568mm로 연중 고른 분포를 나타낸다. 남동쪽 고지대에는 12월 초부터 3월까지 50m의 눈이 쌓여 있다. 1월에는 전국적으로 눈이 내려 대지를 덮고 있으며, 3월말이 되어야 눈이 녹는다. 눈이 녹는 봄에 홍수가 자주 일어난다.
바람은 남서풍과 서풍이 분다. 회오리 바람과 폭우는 드문 편이며 가장 최근에 있었던 폭풍우는 1967년 8월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에스토니아의 기후는 스웨덴의 중부지방, 핀란드의 남동쪽지방과 비슷하다. 파도는 조류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로 바람의 영향을 받는다. 평상시 파도의 높이는 1m미만이나 폭풍이 불 때 파도의 높이는 6m까지 이른다. 여름철 해수(海水) 온도는 평균 16 - 19℃이며 26℃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핀란드만(Gulf of Finland)과 리가만(Gulf of Riga)바다는 겨울에 얼어붙는다. 본토와 섬들사이의 해협도 1월 중순부터 얼기 시작하여 3개월간 계속 얼어 있다. 3월 중순까지 해안 가까이에 있는 얼음의 두께는 80㎝에 이른다.
지리
에스토니아 공화국은 북동부 유럽 발틱해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트 3개국(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중 가장 북쪽인 위도 57°30'- 59°49′, 경도 21°46′- 28°13′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라트비아(Latvia)와 동쪽으로 러시아연방(Russia) 사이에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발트해(Baltic Sea)와 북쪽으로 핀란드 만(Gulf of Finland)에 접해 있다. 이런 전략적 위치로 에스토니아에서는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발트해의 크고 작은 1,520 개의 섬을 포함한 에스토니아 국토의 총면적은 45,215㎢이며 하천이나 습지, 늪지, 1,500개 이상의 호수를 제외한 땅 면적은 43.200㎢이다. 리가(Gulf of Riga)만의 가장 큰 섬 Saaremaa(2,673㎢)을 비롯하여 Hiiumaa(989㎢), Muhu(200㎢), Vormsi(92.9㎢) 등의 섬들이 있고 섬들의 총면적은 4,133㎢이다. 한반도 면적의 약 1/5에 해당하며,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의 면적보다 약간 넓다. 총 내륙국경선은 633㎞로 라트비아(Latvia)와 339㎞, 러시아와 294㎞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해안선은 1,393㎞이다. 에스토니아는 대러시아평원(The Great Russian Plain)의 북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국토는 전체적으로 평평하나 남쪽 일부지방은 굴곡이 있고 해안선은 복잡하다. 북쪽 해안은 깍이는 듯한 석회암 절벽이지만 서쪽 해안은 낮고 평평하다. 1만-160만년전 홍적세 빙하작용의 흔적이 국토의 여러 군데 남아 있는데 빙하가 북쪽으로 물러날 때 남기고 간 종퇴석(終堆石) 언덕과 그 사이에 있는 습지 및 낮고 평평한 충적평야를 이루었다. 남부는 퇴석 구릉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부지방은 빙식작용으로 꼭대기가 평평해진 구릉지대가 많고 빙하가 움직인 방향을 따라 구릉이 발달하였다. 숲은 전국토의 36%를 차지한다. 가장 큰 강인 Narva강을 포함한 대부분의 강들은 그 길이가 짧고 물의 양이 적은 편이다.
가는 방법
항공
우리나라에서 가는 직항은 없고 경유해서 갈 경우 경유지에서 비행기로 핀란드의 헬싱키(Helsinki)에서 약 35분, 모스코바(Moscow)에서 약 2시간 40분, 라트비아의 리가(Riga)에서 약 1시간,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Vilnius)에서 약 1시간 20분 소요된다. 탈린(Tallinn)공항에서 시내까지 거리는 8㎞이며 자동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핀란드항공(Finnair)은 주 5회에 한하여, 왕복 620mk를 헬싱키에서 탈린까지 운항한다. SAS는 스톡홀롬을 출발하여, 주 1-2회에 운항하며, 아에로플로트(Aeroflot)는 헬싱키(주 3회), 스톡홀롬(주 2회), 프랑크프루트(주 1회), 부다페스트(주 1회)에서 출발한다.

훼리
Haapsalu, Narva, Novotallin, Paldiski, Tallinn 등의 항구가 있는데, 탈린항은 연중 40-50일간 동결한다. 우리나라에서 가는 선박은 직접 없고, 유럽에서 갈 수는 있다고 한다. 바닷길로 에스토니아에 가는 편한 방법은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출발하는 배편이다. 페리호를 이용할 경우 3시간 30분-4시간 정도 소요되며, 편도 요금은 120mk이다. 스웨덴의 스톨홀롬과 탈린 사이에 운행되는 페리는 13시간 30분-14시간 30분 소요되며 승객들은 밤을 페리에서 보내고 아침에 탈린에 도착한다.
탈린(Tallinn)항에서 발트해의 주요 도시 즉, 핀란드의 헬싱키(4시간 소요), 스웨덴의 스톡홀롬, 라트비아의 리가, 러시아의 쌍트 빼제스부르크 등에 해상 정기노선이 운항중이다.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간 고속정이 1시간 30분마다 운행되고 있어 편리하다

보스니아의 주요 도시 정보

사진으로 보는 보스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