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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UKRA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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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요

키예프

604,000km2

우크라이나의 공식언어는 우크라이나어이다. 러시아어의 경우는 공식 언어는 아니지만, 널리 통용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어는 끼릴문자를 사용하며, 러시아어와 벨라루시어와 함께 동슬라브어에 속하고, 광범위하게는 인도유럽어계에 속한다. 다민족국가인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어 이외에 러시아어, 폴란드어등 소수민족언어의 사용도 허용한다. 특히 러시아어는 동부지역에서 교육과 비즈니스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부 국민들 특히 동부지방에서는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까지 제기하기도 한다.

1995년 53,770,000명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또는 유라시아의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흑해의 북쪽 해안에 접해있다. 이 나라는 비옥하고 산림이 많은 평원으로 자연적인 경계는 없다. 우크라이나에는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는데, 석유, 석탄, 철광석, 천연가스 등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프랑스, 독일에 지배를 받거나 저항해왔다. 70년 동안,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공화국이었다가 1991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많은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은 평지로 ‘비옥한 흑토지대’. 구소련 당시 ‘소련의 곡창’이라고 불리움. 석탄, 철광, 석유 등 천연 자원이 풍부하여 유럽 경제의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수도는 인구 260만 명의 키예프이며, 우크라이나는 프랑스보다 조금 큰 크기로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이 나라는 소비에트 공산주의 정부 아래서, 모든 지역들이 잔혹하게 탄압받았다. 1990년 이후로 우크라이나는 종교적 자유를 획득했고, 교회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누리고 있다.
'러시아의 역사는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처럼 9세기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를 중심으로 세워진 '루우시'가 러시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옥한 농목지에 둘러싸인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곡창 지대'라고 불리우며 또, 동부의 도네츠나 드네프르 강 유역에는 광공업이 발달해 농산물 광공업 생산 모두가 발달해 농산물 광공업이 소비에트 연방 전체 생산고의 각각 1/4을 차지할 만큼 풍요한 나라이다. 오랜 역사와 고유의 언어, 종교와 같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민족의식이 높아 옛부터 러시아에게서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이 국가의 국기는 위는 청색, 아래는 황색의 두 가지 색으로 물들인 형태를 지니고 있는 데, 이는 아래서 곡식밭을 나타내는 하늘색과 황금색으로 이루어진 두개의 동일한 수평한 끈을 나타낸다.
유럽권 러시아 남서부에 있는 나라인 우크라이나의 면적은 약 60만 3,700㎢이고, 인구 5,400만 명 정도에 달한다. 수도는 인구 약 2백 6십3만명에 이르는 키예프로서, 천년의 역사를 갖은 도시이자, 구 소련의 여러 도시중 가장 오래된 도시이며, 나무가 많은 도시이다. 이 나라는 면적 면에서만 보더러도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국가에 속한다. 전체적으로 여자가 0.86% 높은 편이며, 평균 수명은 66.8세다. 이곳의 여성은 72.32세이고, 남성은 61.54세의 평균 수명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남한의 6배 정도 되는 땅은 산이 없고 대부분 평지이며 흑토이다. 이 나라의 종업면만 보다라도, 수박의 무게는 6킬로가 넘으며, 한국의 배추씨앗을 심었을때 보통 4-5킬로는 보통이다. 지하자원으로 철과 천연가스,원유,석탄이 있으며, 구소련때 소련 전체의 50% 이상 농작물을 생산하였다. 감자, 옥수수, 양파, 당근, 가지, 토마토, 사탕무우, 고기, 우유 등이 대부분의 농축산업이며, 최근 고려인의 진출 이후 더 활기를 띄고 있다. 경제면을 보면, 러시아 이후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다음 순위 공화국 산출의 약 4배를 생산하는 이전 소련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구성원이었다.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흑토는 소련 농업 생산량의 50%이상 생산했고 그 농장은 고기, 우유,곡물, 야채와 같은 기본재들을 다른 공화국에 공급했다.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의 다양한 중공업은 이전 소련의 다른 지역에서 산업.광업지역에 설비와 다른 원료를 공급했다. 92년초 정부는 대부분의 가격을 자율화 했고, 개인주의를 위한 법적 토대를 세웠다. 그러나 정부와 입법기관 내에서 개혁을 하는 것에 대한 폭넓은 저항은 곧 개혁 노력을 저지했고 이로 인해 늦어진 개혁정책으로 93년말 높은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94년 6월 선거 이후로 당선된 구츠마 대통령의 새로운 경제개혁 프로그램으로 인해 현재 우크라이나 의 경제는 안정세로 진입하고 있다고 보겠다.
우크라이나 공화국은 구 소련에서 분리 되어 온 나라로서 유럽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문학적으로나, 문명적으로 중심지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동서유럽의 중간적 위치에 있어서 종교의 혼합양식을 보여준다. 키예프의 그리스도 원조인 수도로서 신 콘스탄티노플은 키예프 성 소피아 성당으로서 콘스탄티노플의 살아있는 성 소피아으로 설계되었고, 988년에 성 블라디미르 침례교도로 후에 지역적으로 복음을 전파 함으로써 11세기에 창설되었다. 키예프 페쯔르스크 라보라의 정신적, 지적영향은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서 러시아 세계에 있어서 정교의 사상과 신념을 퍼지게하는데 공헌하였다. 정치 역시 대통령 중심의 의원제를 택하고 있다. 지난 95년에는 유럽공동체의회에 들어 갔다. 국민들중 상당수가 경제의 고통으로 공산체제를 그리워하고 있다. 지난 96년 구츠마 대통령의 한국방문으로 한국과의 교류가 깊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여러 나라와의 싸움이 계속되었다가 17세기부터 독립을 선언, 19년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의 결성에 참가하였다.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가 실패한 뒤 바로 독립을 선언하였고, 그 해 12월 독립을 확정하였고 독립국가연합에 가입하였다. 풍부한 철과 석탄, 수력이 결합한 드네프르 공업지대를 중심으로 공업이 활발하며, 예로부터 밀, 감자가 많이 나는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국민총생산은 995억 8,900만 달러(1992), 1인당 국민소득은 1,910달러(1992)이다. 우리나라와는 92년 2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북한과는 같은 해 1월 수교하였다.
종교
러시아 정교회와 우크라이나 정교회, 우크라이나 카톨릭과 그리스 카톨릭 등 종교적인 내부적 갈등이 심하며, 유럽에서 들어온 개신교와 카톨릭은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곳의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파는 70년간 지하교회에서 박해를 이겨온 침례교단이다. 오순절(카리스마 교회)과 안식교,루터란교회,여호와의 증인들도 있다. 최근 통일교 또한 선교사를 파송 포교중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중요한 국가로 동부와 서부를 영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키에프는 러시아 정교가 1000년 전에 탄생했던 곳이다. 수세기 동안 서부의 카톨릭과 동부의 정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충성심을 구하거나 요구했다. 대다수의 우크라이인은 러시아 정교의 신앙을 갖고 있고, 소수만이 로마 카톨릭 신앙을 갖고 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교황의 지도력을 인정하면서 정교 고유의 의식과 구조를 따르는 합동 동방 카톨릭교의 신앙을 갖고 있다. 공산주의 아래서 합동 동방 카톨릭교는 정교회에 가입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지하에서 활동해야 했으나 현재 더욱 더 자유로워졌다. 교회는 공산 치하에서 심한 핍박을 받았다. 1990년부터 종교의 자유가 생겨난 셈이다. 종교적인 분포를 보면, 무종교/기타는 25.5%이고, 유대교는 0.94%, 많은 수가 이스라엘과 서방으로 떠났다고 한다. 회교의 경우는 0.47%, 주로 투르크 종족들이 이 종교에 속한다. 샤머니즘/정령숭배는 0.1%이며, 기독교의 경우는 73%, 개신교 3.2%, 로마 카톨릭교는 15%에 이른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정교를 신봉하고 있긴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고 선교 활동에 대해서 제한을 가하지 않으나 주재국 법에 위반되는 노상 대중 집회나 고성 장치를 동원한 요란한 전도 활동은 완전 금지된다. 따라서, 가급적 봉사 활동을 위주로 한 전도 또는 선교 활동이 바람직하다
주요민족
4~6세기에는 동슬라브족이 살았으나, 12~13세기에 몽골 등의 침입으로 민족이 나뉘었고, 그 중 우크라이나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인도-유럽인은 97.8%를 차지하며, 슬라브인은 96.3%, 우크라이나인은 37,419,000명에 달한다. 러시아인은 11,355,000명이고, 벨로루시인은 440,000명, 불가리아인은 234,000명, 폴란드인은 219,000명에 달한다. 기타 종족으로는 1.5%, 몰다비아/루마니아인은 460,000명 정도이며, 그리이스인은 99,000명, 아르메니아인은 54,000명, 집시들은 약 48,000명이고, 독일인은 38,000명, 그루지아인은 24,000명이다. 또한, 투르크/알타이족은 0.8%의 구성률을 보이며, 타타르족은 87,000명, 크리미안 타타르는 46,000명, 기타 종족으로는 1.4%. 유대인의 경우는 487,000명, 헝가리아인은 187,000명, 몰다비아인은 19,000명 정도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이루고 있는 주요 종족들을 자세히 살펴 보면, 크게 7개의 종족으로 나눌 수 있다. '발칸 집시'(Balkan Gypsies)족은 '롬'(Rom)이라고도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유고슬라비아, 몰도바, 터키, 이란, 우크라이나 등의 동부 유럽과 서남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보통 모든 집시들이 검은 머리와 검은 얼굴빛, 검은 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때로 발칸 집시들 중에 밝은 피부와 금발 머리, 푸른 눈을 가진 집시들도 있는데, 아마도 그들은 유럽인들과의 혼혈족이라고 여겨진다. 인도에 남아 있는 집시들과는 달리, 많은 발칸 집시들은 정착하여 생활하며, 도시 근처의 마을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포장마차, 트럭, 트레일러를 타고 떠돌아다니는 집시들도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아제르바이잔인'(Azerbaijani)은 아제르로도 알려져 있는 데, 이 종족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역사상 수많은 침입을 당해 왔다. 기원전 6세기에 처음으로 페르시아에 정복당한 후에 서기 7세기에는 이슬람이 이 지역에 소개되어 그 이후 지금까지 신앙이 지켜지고 있다. 11세기까지 터키의 영향이 페르시아보다 강했다. 결국 13세기에 아시아의 이 지역은 징기스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수많은 침입들이 이 종족의 성격과 결부되어 아제르인이 중앙아시아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중요한 아제르인의 공동체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란, 그리고 이라크에서 발견된다. 오늘날 약 37,000명의 아제르인 사람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살고 있다. 일부는 농사를 짓고, 많은 사람들이 도시의 공장에서 일한다. 그들은 기술 수준이 낮아서 외국인 관리자 아래서 일한다. 또한,'우즈벡'(Uzbek)인들은 2천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즈벡인들은 투르크 종족의 하나로 주로 중앙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으며, 약 1천5백만명이 고국인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다우즈벡의 최초의 조상인 중앙아시아 투르크족은 1300년대에 징기스칸을 도와 동부 유럽을 정복했다. 마침내, 투르크족과 몽골족 간의 동맹이 깨어지면서, 많은 전쟁국가들이 생겨났다. 우즈벡이 계통을 이어받은 것도 이러한 왕국들 중 몇몇 나라였다.1800년대 중반에 우즈벡족의 대부분은 러시아에 정복당했다. 그들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당이 권력을 얻기 까지 짜르의 통치 아래 있었다.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는 많은 우즈벡 유목민과 농부들을 집단 농장에 강제 정착시켰다. 소련이 1991년 붕괴되면서, 우즈베키스탄은 독립국이 되었다. 유럽의 '유태인'(Jews)들은 적어도 2000년 이전, 로마 제국 초기에 유럽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 이들은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오늘날 "유태인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상당한 부분이 유럽 유태인들 안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유럽 유태인중에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아시케나지(Ashkenazic) 유태인과 세파디(Sephardic) 유태인 간의 차이이다. 아시케나지(Ashkenaz)란 말은 유럽의 광범위한 게르만지역을 뜻하는 성경에서 기원한 말이다. 따라서 아시케나지 유태인들이란 그 지역과 관련된 조상을 갖는 유태인을 일컫는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히브리어와 슬라브어의 요소를 다분히 포함하는 독일계 방언인 이디시어(Yiddish)를 사용한다. 세파디(Sephard)란 말은 중세에 유태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가리켜 사용했던 이름이다. 그 외에도, '자트족'(Jats)은 주로 인도의 북서부, 파키스탄의 남부에서 살며, 몰디브,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도 영향력 있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혈통, 역사 그리고 현재의 분포지역 등은 훨씬 넓은 지역에 걸쳐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들은 무슬림 정복자들과 더불어 이집트까지 진출하였고, 무슬림보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에 살고 있었으며, 몽고의 군대와 함께 중국을 침입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또한 페르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티무르인들에게도 위협을 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혈통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다른 의견이 있지만 대부분 그들을 인도-아리안계 혈통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들이 집시의 선조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혈통이 어떻든간에 18세기에 자트족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이루었다. 이들의 삶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자트족은 매우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 잘 알려진 자트족의 속담 중에 "사람들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지만, 나는 영원히 계속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용감하며, 열심히 일하며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과 능력을 가진 민족이다. 자트족은 지배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크리미안 타타르'(Crimean Tatar)족의 경우는 구 소련의 거의 모든 공화국에서 커다란 공동체를 형성하던 투르크 종족의 일족이다. 주요 인구는 볼가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또한 아제르바이잔,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공화국에도 거주한다. 타타르족은 10세기 이후로 강력한 문명을 이루어왔으며, 그들은 13세기 몽골의 침입과 16세기 러시아의 정복에서도 살아남았다. 19세기에 타타르의 도시들은 이슬람 세계의 가장 위대한 문화 중심지 중 순위가 매겨질 정도이다. 타타르족은 몇 개의 러시아 도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 중에 30% 이상이 러시아어를 그들의 모국어로 구사하고 있다. 그 밖의 사람들은 타타르어를 그들의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타타르 민족의 신체적 특징은 푸른 눈의 금발 머리을 가진 사람들에서, 보다 몽골의 특징을 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얼굴에는 털이 거의 없으며 계란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타타르'(Tartar)족은 구 소련의 거의 모든 공화국에서 커다란 공동체를 형성하던 투르크 종족의 일족이다. 주요 인구는 볼가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또한 아제르바이잔, 벨로루시, 우크라이나와 중앙아시아 공화국에도 거주한다. 이들은 10세기 이후로 강력한 문명을 이루어왔으며, 그들은 13세기 몽골의 침입과 16세기 러시아의 정복에서도 살아남았다. 19세기에 타타르의 도시들은 이슬람 세계의 가장 위대한 문화 중심지 중 순위가 매겨질 정도이다. 타타르족은 몇 개의 러시아 도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 중에 30% 이상이 러시아어를 그들의 모국어로 구사하고 있다. 그 밖의 사람들은 타타르어를 그들의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타타르 민족의 신체적 특징은 푸른 눈의 금발 머리을 가진 사람들에서, 보다 몽골의 특징을 닮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얼굴에는 털이 거의 없으며 계란형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삶의 모습을 보면,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타타르의 88%가 도시 지역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삶은 현재 러시아 사람들의 삶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시골 지역에서 일부 사람들은 혁명 이전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외딴 지역에서, 3세대에 이르기까지 한 집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사회제도는 강한 가부장적이다. 이것은 아버지가 가족 내에서 법적으로 가장이 되며, 모든 가정문제에 있어서 최종 결정자임을 의미한다. 남자들은 가족의 소득과 어떻게 지출할 것인가에 대해 책임을 지
기후
우크라이나는 한국과 같이 뚜렷한 사계절을 갖는다. 전체적으로는 대륙성 기후를 띠나, 크림반도가 위치한 남부지역은 아열대와 지중해성 기후를 띤다. 겨울철 기온은 -8°C와 2°C 사이이며, 여름철에는 17°C에서 25°C사이의 기온을 보인다. 강수량은 북에서 남으로 갈수록 감소하는 경향이다.강수량은 고르지 않은 편으로 추운 계절보다는 더운 계절에 2∼3배 더 많이 내리며 우크라이나 남부의 스텝지대는 불충분한 강수량으로 인해 가뭄 피해를 겪는 경우도 있다.
즉, 대륙성 기후에 속하고, 남부 크림반도는 아열대성 기후 우크라이나의 내륙은 온화한 대륙성 기후로 7월이 가장 덮고 온도는 평균 23도이며, 가장 추운 1월에는 영하의 기온을 유지한다. 동부지역은 차가운 시베리아 풍의 영향을 받지만 서부는 따듯한 지중해 풍의 영향을 받아 해안도시인 얄타(Yalta)와 오데사(Odessa)는 내륙도시보다 따뜻하다. 내륙은 6-7월이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이고 해안은 12-1월에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 국가의 북부는 우량도 많고 습지인 삼림지대, 중부는 기후가 온난한 흑토와 삼림의 스텝 지대, 남부는 건조한 스텝 지대를 이룬다.
지리
우크라이나는 북위 49도, 동경 32도로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서 흑해를 접하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교차하는 지점에서 중요한 전략적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북쪽으로 벨로루시, 북쪽·북동쪽·동쪽으로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아조프 해, 흑해, 남서쪽으로 몰도바·루마니아, 서쪽으로 헝가리·슬로바키아·폴란드와 접해 있다.
가는 방법
항공
주요공항은 키예프 근처의 보리스폴 공항과 오데사·리보프·하리코프에 있는 공항이다.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국제공항인 볼리스폴 공항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유럽 각국에서 항공기를 이용하여 입국할 수 있다. 비행편은 주로 CIS국가 및 동유럽 국가에서의 비행편이 많은 편이며 비록 비행기 운항 회수는 적지만 서유럽의 파리, 뒤셀도르프, 잘츠부르크, 빈, 취리히 등지와도 항공편이 연결되어 있다.
키예프에서 런던까지는 3시간 30분, 모스코바까지는 1시간 15분 비엔나까지는 2시간 소요된다. 우크라이나 국제 항공사의 전화는 012-93-553-767이다. 국제공항에서 키예프 까지의 거리는 34Km이며, 24시간 운영하는 은행과 면세점, 식당, 어린이를 위한 공간, 24시간 영업하는 우체국, 수화물 보관소, 약국 등이 자리하고 있다. 공항에서의 교통편은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비용은 미화 $20이다.

훼리
약 80여 개에 달하는 국제 항구를 갖춘 우크라이나는 유명한 항으로 오데사항, 헤르손항, 이리체프스크항, 마리우폴항 등이 있는 데, 1991년 말경 3,900㎞에 달하는 총연장 길이를 자랑하는 수로가 만들어 졌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드네프르 강이 내륙과 흑해를 연결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 정보

사진으로 보는 우크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