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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 러시아 > 상트페테르부르크[St_Peter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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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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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요

산업
19세기 후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화려한 궁정문화와 함께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을 향하는 산업도시로서의 본격적인 성장을 했다. 그러한 성장은 무엇보다 당시의 새로운 교통·통신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이루어졌다. 1813년에는 러시아 최초의 증기선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건조되었고,1837년에는 지금의 푸쉬킨 시와 여름궁전을 잇는 최초의 철도가 부설되었다. 그 뒤 1841년 모스크바까지의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1862년에는 러시아 내륙과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망이 부설되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이러한 성장은 1861년 알렉산드로 2세가 단행한 농노해방에 힘입은바 크다. 농노해방에 형식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봉건지주의 속박에서 벗어난 농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당시러시아 최대 공업도시이자 수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도시의 인구는 1864년 53만 9,400명에서 1900년에는 150만으로 늘어났고 10월 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에는 250만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인구급증은 당연히 공업발전에 필요한 값싼 노동력의 공급을 원활하게 했고,도시의 산업발전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챠르의 전제 정치에 대한 혁명의 온상이 되었다. 국가 기간산업의 집중과 공업의 발달로 1914년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공장 노동자가 25만에 달했다. 이들의 작업 환경은 더럽고 비위생적이었으며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야 했다.

현재 러시아 연방에서 가장 중요한 공업도시로 전체 고용인구의 절반 이상이 공업과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공업은 기계공업과 화학공업의 비중이 큰데,특히 기계공업 분야가 발달하여 시 공업생산의 1/2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화학공업은 비료·타이어·합성고무·페인트·플라스틱·약품 등을 생산한다. 그밖에 냉장고·라디오·텔레비전 등 가전제품 중심의 소비재공업과 자동차공업 및 조선 업이 발달하였다. 반면에 에너지의 기반이 미약하여 멀리 떨어진 북방의 보르쿠타·페초라탄전의 석탄,에스토니아의 석유·가스,모스크바 방면으로부터의 파이프라인에 의한 송유, 볼가 및 우랄 방면으로부터의 장거리 송전 등에 크게 의존한다.
소개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이 말한 '유럽을 향해 열린 창'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 2의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다. 모스크바가 러시아의 힘과 영과을 차지하기 전에는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그 역할을 담당했었다.1703년 피터 대제에 의해 건설된 이래 200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로 시작해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란 이름을 거쳐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되었다. 1703년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네바강 하류 습지대에 건설된 뻬뜨로파블로스끄 요새의 완공과 함께 탄생된 이 도시는 1712년 모스크바를 제치고 나라의 심장부로 등장하면서 두 세기에 걸쳐 제정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러시아 여느 도시들 가운데서도, 특히 수많은 외국인들로 붐비는 모스크바와는 대조적으로 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은 가히 하늘을 찌를 정도이다.



30개가 넘는 네바 강 위의 섬을 다리로 연결하느라 생긴 수많은 운하들로 인해 북구의 암스텔담, 베네치아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또한 성 페테르부르크를 찾는 여행자들은 18, 19세기 바로크의 아름답고 화려한 건축, 에카테레나 여제가 모아 놓은 수많은 예술품들을 만난다.

성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두 도시는 경쟁 도시로 흔히 비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수도인 모스크바가 유럽에서 제일 아시아적인 느낌이 강한 도시라면,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가장 유럽의 느낌이 강한 도시라 하겠다. 모스크바에 비해 도시 역사는 짧지만, 2차대전 중 모스크바가 건물 대다수가 파괴되는 곤욕을 치러야 했던 데 반해, 페테르부르크는 죽은이의 살을 베어먹어야 할 만큼 참혹한 판국에서도 독일군의 봉쇄 전략에 끝까지 대항해 도시를 지킨 시민들의 그 유명한 9백일 항전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18 ∼19세기 바로크풍의 건물들이 예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뽐내고 있다.



이 도시는 많은 전설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86개의 강과 운하, 101개의 섬이 365개의 다리(교외까지 포함하면 623개)로 연결된 물의 도시이기 때문에 '북방의 베네치아', '제 2의 암스텔담'이라고 불리었다. 도시 면적의 1/10이 수면이고, 늪지대를 매립해서 건립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들이 붙여진 것이다. 곳곳에 들어선 공원, 광장, 궁터 그리고 질서정연한 도시계획 때문에 '북쪽의 파리'라고도 하며 백야인 여름에는 북국의 오아시스로서 사람들에게 평화를 준다.

이곳은 유럽에서도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일찍부터 유럽의 건축양식과 문화·문화, 예술, 사상 등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러시아 제정을 붕괴한 동란의 진원지이며, 10월혁명의 발상지로서 세계사에 사회주의 혁명의 도시로 각인돼 있다. 도시의 모습은 르네상스시대이래 서구적인 도시계획의 표준형으로서 기하학적이며 직선적이었는데, 중세 풍의 도로가 구불구불하게 있는 비뚤어진 모양의 비조직적인 형태는 러시아에 있어서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격변하는 러시아 역사의 전개를 그대로 반영하듯이 이 도시의 이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건립될 당시 조선과 항해술이 발달하고 선진국으로 흠모의 대상이었던 네덜란드에 푹 빠진 표르트 대제는 네덜란드 식으로 지은 이름을 성 삐제르부르크라고 하였다. 이 이름은 곧 독일식의 성 페테르부르크로 바뀌어 제정 시대 내내 수도로서 역할 해 왔으나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불법 침공에 저항하는 뜻으로 적국의 이름 형태를 버리고 뻬뜨로그라드로 개명하였다. 그 후 레닌이 사망한(1924) 이후 혁명운동 본거지였던 이 도시를 가리키는 뜻에서 레닌그라드로 명명되었다. 그러나 91년 11월 7일 소련연방의 해체와 함께 찾아온 사회주의 혁명과정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본래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되었다. 제정과 사회주의 체제,그리고 공화국이라고 하는 세가지의 다른 역사와 문화를 알기에 좋은 여행지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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